시조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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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남계 박종순
제 목    이화우,기러기
[계 랑]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난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풀이>

하얀 배꽃비가 눈보라처럼 흩날리던 어느 봄날에 옷소매 부여 잡고
울며 헤어진 님인데, 지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 되었어도
한마디 소식이 없구려.
서울에 계시는 무정한 님이여. 그대도 나를 생각하고 계시는지.....
부안과 서울, 천리밖에 멀리 떨어져서 몸은 못가고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니 애가 타는 구려!  꿈에만 볼 수 있는 그리운 님이여!

계랑(1513-1550)

성은 이씨, 본명은 향금, 자는 천향(天香), 호는 매창, 계생. 글자가 모두
꽃과 관계가 있어 기생임을 알 수 있다.
부안 명기였으며 황진이와 비견할 만한 여류 시인으로서, 여성다운 정서를
노래한 시편이 많으며 '매창집'이 있다. 시조 및 한시 70여수가 전한다

아전의 딸로 태어나 기생이 되었다. 매창(梅窓)은 전라도 부안에서
아전 이탕종의 딸로 태어났다. 계유년에 태어났으므로 계 생(癸生)이라고
불렀는데, 계생(桂生)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간단한 한문을 배웠는데, 워낙 재주가 뛰어나
곧 시(詩)를 지었다. 거문고도 잘 타고 노래도 잘 불렀다.
당연히 그느 화류계의 건달들보다 글 짓는 선비들과 가깝게 지냈다.
지봉 이수광은 그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계량은 부안의 기생인데,
스스로 호를 매창이라고 하였다.

언젠가 지나가던 나그네가 그 의 이름을 듣고는 시를 지어서 그를
유혹하였다. 계량이 그 시 에 차운(次韻:남의 운을 써 서 시를 지음)
하여 답했다.

떠돌며 밥 얻어먹는 법이라곤 평생 배우지 않고
매화나무 창가에 비치는 달 그림자만 나 홀로 사랑했다오.
고요히 살려는 나의 뜻을 그대는 알지 못하고
뜬 구름이라 손가락질하며 잘못 알고 있구나.

그랬더니 그 사람이 서운해서 가버렸 다. 계량은 평소에 거문고와 시를
즐겼으므로 죽을 때 에도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1974년 부안읍 상소산 기슭에 그녀의 시비가 세워졌다.

임진왜란때, 의병 지휘의 공으로 통정대부가 된 촌은 유희경과 정이
깊었는데, 그가 서울로 올라간 뒤 소식이 없으므로, 이 시조를 짓고
수절 하였다고 한다.  (유희경은 선조 25년 임란 때 병을 모아서 관군을
도왔음. 광해 10년(1618) 이이첨이 폐모의 상소를 올리라 하자 거절,
절교 후 은거함 1623년 인조 반정 때 절의로써 표상)

의병을 이끌고 동분서주하는 님 유희경. 남장을 하고 그를 찾아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울며 돌아온 계량은 또 이렇게 읊었다.


기러기 산이로 잡아 정들이고 길들여서
임의 집 가는 길을 역력히 가르쳐 주고
밤중만 임 생각 날 제면, 소식 전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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